이제 막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
오래되어 캐캐묵은 상처를 끄집어내는 일.
상처 난 허벅지를 후벼서 끊어진 동맥의 끝을 잡아내는 것만큼이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동맥을 잡지 못하면 결국 죽는다.
허벅지 속에 손을 넣어 헤집을 용기가 없다면, 나는 죽는다.
고통을 이겨내야 사는 것이다.
뭐 이렇게까지 비장한가,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내게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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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는 무던히도 무던히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 가치관대로 살아왔고,
이제 겨우 20살이지만 나름대로의 삶의 명확한 기준이 있다.
그것도 남과는 조금 다른.
나는 나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은 치유해야 할 상처가 많이 남아 있다.
사랑을 하기에는 감당하기 버거운 상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그 사람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
내가 만날 남편, 아이, 가족.
그들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 내 마음의 구석구석까지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
내게는 너무나 큰,
그리고 너무나 오래 외면해서 썩어가고 있는
그러한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그 상처만큼은 스스로 아무리 노력해도 치료할 수가 없다.
넘어져 까진 상처, 멍든 상처는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있지만
암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
암에 대해서 잘 아는 의사가 치료해주는 수밖에.
나도 이 상처만큼은,
내 상처이지만
내가 만든 상처가 아니기에,
누군가가 내게 준, 내 안에 만들어버린 상처이기에
그래서 내가 판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힘들고 벅차기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조금 얻으려고 한다.
이런 종류의 상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이런 종류의 상처를 잘 치료해줄 수 있는
마음의 의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