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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아레
12.03.07
지금 쓰고자 하는 글은 단순한 위로나 칭찬의 글은 아니에요.
이 글을 쓰는 단 한 가지 이유는 하나양이 하루 속히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상담을 통해 진정한 도움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에요.
“울 줄도, 기댈 줄도, 응석부릴 줄도 모르는 사탕 기집애 - 캔디병”
마음 속으로는 항상 덩치가 크고 마음이 넓어 보이는 사람에게 달려가 안기고 싶고 인정받고, 칭찬받고, 위로받고 싶은 갈망이 있지만, 민폐일 것 같아서, 나를 싫어하게 될까봐, 약해보이기 싫어서 강하고 밝은 사람인 척 한다는 거지요.
그건 병이 아니라 하나양이 건강한 자아를 가졌다는 증거고,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 생각에 그 판단은 옳아요.
하나양은 누군가가 다만 하나양의 상처와 고통을 알아주고, 인정해주고 따뜻한 위로의 표현을 건네줬으면 좋겠다고 했나요.
하나양과 계속해서 볼 일이 없거나, 서로 더 깊이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가볍게 지나칠 정도의 사이라면 그런 일회적이고 피상적인 위로를 건네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거예요.
울다 같은 사이버상의 익명의 공간들이 그 좋은 예가 되겠지요.
그런 위로에 진심이 담겨있지 않다는 말이 아니고, 서로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이에선 그 정도 위로의 말을 건네고 지나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는 거죠.
하지만 하나양과 현실 속에서 좀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하나양은, 상대가 무엇을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단지 토닥여주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주길 바랄 뿐이다,라고 답하겠지요.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폭탄을 터뜨렸을 때”라는 표현이 더 맞을 거예요), 상대는 충격에 휩싸이고 당황스럽겠지만 일단 놀라움을 수습하고나면, 누구라도 반사적으로 위로의 말을 몇마디 건넬 수는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닌 관계라면, 그 다음 전개될 상황은 어떨까요.
바로 여기가 하나양과 상대방 사이에 간극이 생기는 지점이에요.
지인이나 친구들이 하나양의 고민을 듣고난 후, 어떤 반응이나 태도를 보일까요.
먼저 하나양이 이미 익숙히 알고 있을 첫 번째 유형, “외면/회피형”이 있겠네요.
하나양의 엄마나 이모, 이모부, 할머니 등 하나양의 혈육과 친척들이 여기에 속하죠.
하나양의 고통과 상처에 대해 모르는 척 하거나, 더 이상 알고 싶어하지 않거나, 알게 되었더라도 관여하고 싶어하지 않거나.
하나양과 비슷한 또래의 지인이나 친구들 입장에서 얘기해볼께요.
일차적인 보호와 문제 해결의 책임이 있는 혈육들이 그 일을 덮어버리고 없었던 일 취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 삼자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요.
우선 그들 대부분은 그 경험에 대해 무지하고, 그 고통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죠.
살면서 자신이 경험한 다른 종류의 고통과 슬픔을 통해 막연하게 짐작을 하는 거죠.
자신이 가늠할 수도,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는 누군가의 심각하고 깊은 상처나 고통을 대할 때, 그들은 어떤 느낌과 생각이 들까요.
털어놓고 나면 당장 내 마음은 조금 홀가분해질지 모르지만, 상대는 도움이나 답을 줄 수 없어서 안타깝고 마음이 무거울 거예요. 의도치 않게, 상대에게 부담을 지우는 결과를 빚게 되는 거죠. 누구라도 막상 그런 고민을 쉽고 가볍게 들어넘기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더 안좋은 경우라면, 충격에 빠지거나 막연한 공포에 눌릴 거예요.
상대는 하나양의 경험에 대해 무지한만큼, 그걸 겪어낸 하나양 마저도 더 이상 알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되고, 어색한 사이가 되어 멀어질 수도 있을 거구요.
상대에게 답을 기대할 수 없고, 오히려 상대마저 압도해 버릴 심각한 고민이나 문제라면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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