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 아빠를 보면서 배운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나의 정신은
스스로
식물처럼
꾸역꾸역 자라났다.
물론 어떤 행동 방식이라든지
어떤 사고 방식은 부모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보고' 자랐으니까.
하지만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것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적은
맹세코 없다.
하나도.
찾아 보면 꼬투리 하나쯤은 있겠지만
나에게 깊게 남은 인상 같은 것은 없다.
오히려 대학에 와서 만난 친구 한 명에게 배운 것이
살면서 부모에게 배운 것보다 훨씬 많다.
그 친구가,
내가 이렇게 변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친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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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에 처음 왔을 때
나는 '내 이야기를 할 줄 몰랐다.'
한국의 보통 고등학교란,
언제나 정답만을 말하게 할 뿐이다.
맞는 답을 말 해라.
제대로 된 말을 해라.
그리고 틀렸다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말 하지 마라.
그래서 나는 '내 의견'을 말 할 줄 몰랐다.
그런데 대학에 와서 그 친구와 같은 조가 되었을 때
그 친구가 자신의 의견을 스스럼 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별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냥 MT를 어떤 방식으로 했으면 좋겠냐는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었다.
정말 별것 아닌 생각이었는데
나는 속으로
'아 이 생각은 별로인 것 같아.'라며
계속 삼키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냥 어디로 가서 무엇을 했으면 좋겠다.' 라고.
그걸 보면서 느꼈다.
뭔가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말 할 수 있는 것이구나.
이런 사소한 생각 하나하나가 모여 결국은 전체를 이루는 것이구나.
내가
자존감을 기르는 데 한 몫 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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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에게 해외 교류 프로그램을 같이 하자고 제안해준 것도 이 친구이다.
이 해외 교류 프로그램은 나를 참 많이 변화시켜 주었고
아직도 나에게 소중한 일이다.
이 친구는
학기 초에 내가 알던 유일한 남자 아이였다.
그리고,
남자도 편하게 친구가 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으로 느낀 것이 이 친구로부터였다.
편한 친구,
그런 아이.
또 하나 배운 것은
'전화 하는 법'
나는 전화 공포증이 있다.
전화를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언제나 전화를 하면 용건만 말하고 틱 끊곤 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전화를 하는 것을 들으니 그렇지 않았다.
나에게 전화를 했을 때도
'안녕, 하나야'
라고 먼저 말을 하고
'잘 지냈어? 어떻게 지냈어? 어, 뭐는 잘 갔다 왔어?'
라면서 짤막한 안부도 묻고
자신의 이야기도 조금 하면서
그렇게 대화를 이어나가다가
용건을 이야기하고
그리고 다시 마무리로 몇 마디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전화를 받으니
기분도 좋았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요즘은 전화를 걸었을 때
용건을 바로 말하지 않고
안부도 묻고,
수화기 너머의 상대와 진짜 대화한다는 생각으로
전화를 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아이를
준아버지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뭐, 존경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나랑 동갑인데다가
어린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로부터 배우지 못한
사회적인 측면을
나는 이 친구로부터 많이 배우고 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법이라든지
전화를 하는 법이라든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얻는 과정이라든지,
내가 아버지로부터 배워야했을 것들을
이 친구를 보면서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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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엄마로부터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우는 친구도 있다.
엄밀히 말하면 오빠이지만,
오빠도 친구지 뭐.
아무튼 그 친구로부터는 '포근함'을 느낀다.
그리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법을 배운다.
'마음을 나누는 것'
그것을 배우고 있다.
내가 엄마에게서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
사랑을 받고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
사랑의 상징,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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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따금 생각한다.
누가 나를 처음부터 다시 키워줬으면 좋겠다고.
지금의 나는 부족한 게 너무 많고
배우지 못한 게 너무 많아서
제발 제대로 된 부모가
나를 다시 키워줬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부터 스스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가야 한다.
주변으로부터 배우면서,
제2, 제3의 부모를 만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