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연락 안 했다고 뭘 그렇게 걱정해.
내가 더 깜짝 놀랐잖아.
무슨 전화를 열 통이 넘게 그렇게 해대니.
내가 뭐 일주일 연락 끊긴 것도 아니고.
이제 하루 연락 안 한 건데.
내가 애도 아니고.
진짜 깜짝 놀랐어.어휴
그냥 좀 혼자 있고 싶었어.
다 지쳐서.
스트레스 받아서 폭발 직전이었다구.
기분이 좋지 않은데 자기랑 연락하는 것도 지쳤어.
늘 혼자만 살던 내가 누군가랑 같이 있으려니까 피곤하다.
혼자 좀 있을게.
그냥 그것 뿐이야.
혼자 조용히 있을 시간이 조금 필요한 거.
생각해야 할 문제들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견뎌내야 할 문제들도 많아서
그걸 다 털어놓는 것 자체도 나한테는 짐이고 부담이라서
그냥 혼자 있고 싶어.
뭐가 그렇게 힘드냐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그렇게 힘들어.
내가 그래.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는 거야.
그리고,
꽤 많아.
힘든 걸 나누면 반이 된다지.
하지만 나누는 것 자체가 힘들다면,
그 땐 다시 두 배가 돼버리는 거야.
혼자 있을게.
나 좀 내버려둬줘.
자기가 싫어진 건 아니야.
그냥 언제나 혼자 짊어지던 걸 갑자기 누가 나누려 하니까
부담스러워.
누구한테 나의 기분이 항상 노출되고
내 안 좋은 일들을 이야기해야만 한다는 게
부담스러워.
이해시키고 설명해야만 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워.
그리고 자기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도 있어.
누구를 좋아하고 사귀다 보면 당연히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라고 생각해.
좋아하니까 바라는 게 생기고
나는 바라는 걸 잘 얘기하지 못하는 성격이니까 쌓이고
쌓이다보면 스트레스가 되고.
그런데 친구들이랑 얘기하다보면 다 그 정도는 있더라고.
그러니까 자기 때문에 신경 쓰는 게 있는 게 당연한 거긴 한데,
다른 상황이 힘드니까 그것마저도 힘들다.
솔직히 말하면 계속 연락하고 있는 게 꽤나 지쳐.
기분이 안 좋아서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고
얘기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는데
조금만 있으면 왜 연락 안 했냐, 무슨 일 있냐,
걱정을 하니까.
그리고 자주 못 만나는 것도 나한테는 스트레스야.
나는 좀 자주 보고 이야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어.
그런데 매일 카톡만 하고 통화만 하니까 답답하기도 하고.
자기는 내가 별로 안 보고 싶나, 하는 생각도 들고.
나는 주말에 언제나 자기를 볼 수 있게 시간을 비워두는데
자기는 다른 일이 있으면 나보다 그게 먼저인 것 같아서 싫어.
하지만 이런 걸 이야기하기에는 나는 내 속 얘기를 하는 게 익숙치 않아.
그래서 항상 쌓아두고만 있어.
무엇보다도 자기와 함께 했던 두 번의 섹스는 나한테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라서,
지금 좀 괴로워.
별 일 아니다, 자기가 미안하다고 했으니 금방 잊혀질 거다,
생각하지만 그게 잘 안 돼.
그냥 이따금 생각하면 눈물도 나고.
미안하지만 내가 믿는 사람들한테 이야기도 해봤는데
하나같이 아직도 사귀냐는 반응,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
사실 처음 자기랑 잤을 때부터 내 마음은 내리막이었어.
왜인지 알아?
'신뢰'에 금이 갔기 때문이야.
나는 오빠를 믿었는데.
믿었던 사람이 나한테 그랬어.
물론 오빠는 오빠 나름대로 나에게 물어봤지.
해도 되냐고.
하지만 그 분위기에서 나는 왠지 똑부러지게 거절할 수가 없었어.
그리고 나는 설마 오빠가 질내사정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
콘돔이 없을 거라는 생각도 못 했어.
그런데 오빠는 콘돔도 없었고, 처음이었던 나에게 질내사정을 했어.
나는 얼떨떨 했지.
당시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어.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참 슬프고 화가 났어.
그런데 바보 같이 화도 못 내겠지, 뭐야.
그냥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만들고 싶었어. 이제 사귄 지 2주밖에 안 됐는데
싸우기도 싫었고, 나쁜 일로 만들고 싶지도 않았어.
그래서 오빠가 밉고 실망스러웠고 화도 났고 슬펐고 우울했지만
그냥 괜찮은 척 했어.
그런데 그게 괜찮지 않았어.
나름 태어나서 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첫경험을 했는데.
장소와 분위기는 불편했고, 무지 아팠고, 피임을 안 해서 무지 불안했어.
불편하고, 아프고, 불안하니
나는 좋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았지.
그냥 오빠 사정만 도와준 느낌이었어.
그리고 나는 피임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임신을 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오빠가 나를 배려해주지 않았다는 실망감에 시달렸어.
집에 돌아와 걱정하고 고민하다가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바로 다음 날 산부인과에 가서 피임약 처방을 받았지.
멋쩍고 창피했지만 나는 최대한 당당하게 산부인과로 들어갔어.
그리고 최대한 태연하게 진료를 받고 피임약 처방전을 가지고 나왔지.
그게 끝은 아니었어. 다시 약국으로 들어갔어.
피임약 처방전을 접수하고, 약을 받았지.
이 때도 나는 태연한 척 하려고 노력했어.
약을 받은 다음, 최대한 빨리 먹으라는 산부인과 의사의 말대로
나는 약국에서 바로 약을 먹었어.
아주 태연하게.
그리고 자기한테 전화가 왔지.
괜찮다고.
약 먹었다고.
사실은 괜찮지 않았어.
그 뒤로 나는 일주일을 울면서 보냈어.
자기는 수영장에서 놀고 있을 때 말이야.
자기가 미웠어.
하지만 미움보다도 좋아하는 마음이 컸고
그 때는 화를 내면 큰일 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어.
다음부턴 안 그러겠지.
나랑 약속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오빠를 믿고 다시 한 번 허락했는데,
오빠는 또 콘돔이 없었어.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내가 21살이라는 나이에
첫경험을 하고
몸에 그렇게도 안 좋다는 사후 피임약을 먹고
일주일을 우울해 하는 걸 지켜봤으면서도
어떻게 또 콘돔을 안 가져올 수가 있었을까.
그 부터 사실 나는 자기를 믿지 못했어.
스킨쉽이 불편했고
또 하고 싶어할까봐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됐어.
가뜩이나 나는 경험이 부족해서
피임을 하자고 똑부러지게 얘기하는 게 너무 힘든데
먼저 배려를 해줬으면 좋겠는데도
자기는 언제나 콘돔을 사용하기 싫어했으니까.
그리고 자기가 콘돔을 잘 안 쓴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 되겠다'라는 생각도 했었어.
위험할 것 같다고.
벌써부터 얘기했지만 나는 생리주기가 불규칙하기 때문에
그렇게 막 하면 안 되는데 말이야.
아무튼 나한테 있어서 오빠와의 두 번의 잠자리는 모두 상처로 남았어.
지금도 가끔 생각하면 눈물이 나려고 해.
그런 상처를 나에게 준 사람과 내가 계속 함께하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도 가끔씩 드는 것도 사실이야.
이런 모든 일들을 겪고도 자기가 아직도 좋은 걸 보면
나는 어지간히도 자기가 좋은 가봐.
이런 일들이 없었다면 더 좋아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어.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들이 마음에 담겨 있어.
그런데 문제는 나는 이야기하는 데 서툴다는 거야.
특히 성 문제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건 너무너무 서툴러서
내가 받은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지금까지 쌓아오다가 지금에서야 터진 것 같아.
한꺼번에 이야기해서 부담스럽겠다.
하지만 나도 그동안 안고 있느라 많이 힘들었어.
내가 말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애초에 자기가 나한테 이런 상처를 준 게 더 큰 실수였다고 생각해.
결론적으로 나는 많이 힘들었으니까.
나는 글로 표현하려면 참 잘되는데
왜 말은 잘 안 되는지 모르겠어.
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나는 이 마음만은 전하려 해.
더 이상 담아두면서 자기랑 만날 수는 없을 것 같아.
내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말이야.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