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패다.
3월 중순 쯤에,
아침 산책을 시작했다.
동네를 돌기도 하고,
뒷산 등산도 좀 하고.
산을 넘어가면 자연장 공원이 있는데,
그 비탈길도 좀 오르내리고.
산과 오르막길은
허벅지와 종아리가 당기는 느낌이 들어서
운동하기 재미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산책을 하고 돌아오면
근육이 두근두근,
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게 또 좋았다.
하지만 그 때 풀었어야 했다.
허벅지가 뭉쳐있고 종아리가 뭉쳐있으니
뭔가 운동을 한 느낌도 나고 좋아서
계속 그냥 내버려뒀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
종아리가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둘레를 재보니 3cm나 불어나버렸다.
하....................
착시 현상이 아닐까,
뭐 괜찮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얼마 전부터는 저녁에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걷기 시작했다.
이제 발목 바로 윗부분까지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아 진짜 망했다고.
.
.
비록 가슴은 작지만
(와이어로 커버가 가능하고)
배는 나왔지만
(힘주면 들어가니 괜찮고)
다리는 나름대로 예쁘다고 생각했고,
칭찬도 많이 들었었는데.
아 뭐 살이 3, 4kg이 빠지긴 빠졌는데
가슴에서 다 빠졌는지
가슴만 작아지고
허벅지 둘레도 그대로고.
어디서 빠졌는지 알 수도 없구만
종아리만 굵어졌다.
아아아아아아
.
.
어떻게 하지?
운동을 쉬어야 하나?
종아리 알은 등산 때문에 굵어진 것 같은데,
등산을 쉬면
근육을 안 쓰게 되니까 다시 돌아오려나?
지난 달 부터는 등산도 잘 안 다녔는데.
처음 한 달 동안 종아리가 두꺼워지더니,
그 다음 두 달 동안은 변화가 없긴 했다.
빠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더 두꺼워지지는 않았다.
아마 초봄에 다리를 잘 안 풀어주고
들로 산으로 쏘다녀서 그런 것 같다.
발목 윗쪽은 걸어서 알이 배긴 것 같은데,
이건 통증이 있는 걸 보니 근육이 뭉쳐 알이 배긴 상태인 것 같다.
(다리 알은 아프지도 않은 걸 보니,
근육이 '생.겼.음.'이 분명하다, 으아)
그 쪽은 마사지하면서 풀어주어야겠다.
일단 종아리 두께 재면서
한 달 정도 더 걸어봐야지.
운동을 하니 살이 빠져서 좋은 것도 있지만,
그 자체로도 좋은 것 같다.
아침에 하는 산책은 하루를 상쾌하게 해주고
저녁에 하는 운동은,
몸을 약간 피곤하게 해줘서
잠도 오게 해주고
느슨했던 하루의 활력이 되어주는 것 같다.
무엇보다 난 굶지를 못해서 먹을 건 먹어야 되는데,
한 끼도 굶지 않으면서 4kg가 빠졌으니
운동은 계속 하고 싶다.
이제 1kg만 더 빼면
지난 여름에 갑자기 쪄버렸던 살은 다 뺀다.
물론 부위는 좀 다르지만-
몸무게는 원래대로 돌렸으니 이제 더 욕심은 없다.
지금이 59kg인데,
작년 여름에 필리핀 가기 전 몸무게인 58kg까지만 빼야지.
한 달 정도만 더 운동하면 무난히 빠질 것 같다.
그 다음엔 체형을 돌려놔야지.
허벅지 안쪽 살이 쪘는데
다시 안 빠지고 있다.
걸을 때 스치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걸으면 허벅지가 살짝 스친다.
느낌이 너무 이상하다.
이건 아르바이트 시작하면
금방 해결될 듯 하긴 하다.
운동도 습관이 됐겠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활동량도 더 늘어나면
어느 정도는 더 빠지겠지.
지금은 활동량이 매우 적으니까.
운동 사이에는 거의 쉬거나 공부.
아니면 친구를 만나거나,
가끔 동아리 활동을 다녀오는 정도.
게다가 식습관도 좀 괜찮아졌다.
무슨 레시피들이 엄청 많았는데
그런 걸 내가 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
일단 엄청난 노력이 드는 건 둘째치고
돈이 들잖아.
당장 운동하러 나갈 버스비도 없는데.
그래서 그냥 집에 있는 것 중에
몸에 좋은 걸로 골라 먹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엔 잘 안 됐다.
며칠 잘 되다가도
다시 리셋.
라면 먹고 과자 먹고.
그러다가 요즘 읽던 오쇼 라즈니쉬의 장자 강의 책에서 읽었던 글귀가,
마음을 뚫고 들어오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식습관을 좋게 하는 데 도움이 됐다.
사실 오쇼의 의도는 그게 전혀 아니었지만.
오쇼의 원래 의도는,
죽은 후에 자연스럽게 썩어들어가고
다른 생물들에게 먹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식이라는 걸
말하려는 것이었다.
왜 태우거나 관에 담아 묻거나 그러냐고.
살면서 수많은 생명들을 먹고 마셨으니,
다른 생명들에게도 자신을 먹을 기회를 주라고.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무언가를 먹는다는 건,
한 생명을 죽인다는 것이다.
먹으려면 어찌되었든 죽여야 한다.
생물은 생물만을 먹기 때문이다.'
맞다.
내가 먹는 것들은 지금은 움직이지 않지만
언젠가는 다 살아있던 것들이다.
고기는 물론이거니와
채소, 곡식들.
그리고 나아가 과자까지도.
과자나 사탕이라고 해서 생명이 아니었던 것이 아니다.
과자는 밀가루로 만들고
밀가루는 밀로 만드는데
밀도 살아 있던 것이다.
사탕은 설탕으로 만드는데
설탕도 다름아닌 사탕수수라는 식물이었다.
밥도 쌀이라는 식물로 만든 것이다.
완성된 개체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도감에 나오지 않는 것들이라 하더라도
'생명(生命)'이다.
하다못해 무정란도,
물도.
나 자신이 생물이기에
생물만을 먹을 수 있고
그 즉슨,
내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전에 생명이었거나
현재 생명이다.
그렇다고 먹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아니다.
단지,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굳이 생명을 먹을 필요가 있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전에는
심심하면 먹었다.
식사를 하고 나서도
입이 궁금하면 뭘 먹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었고,
먹을 것이 있으면 먹었다.
하지만 이제 뭔가가 먹고 싶어지면
이런 생각부터 든다.
내가 이걸 안 먹어도 사는데,
굳이 이만큼의 생명을 더 없애야 하나,
밥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
내가 먹어야 하는 만큼,
딱 먹고 싶은 만큼만 먹으면 되는데
내 욕심으로 너무 많은 생명을 먹진 말아야지,
이렇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적게 먹게 되고
그게 별로 스트레스가 안 된다.
구태여 참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안 먹는 편이 낫겠다,
는 생각이 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뭐 그래도 가끔 과자나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으면 먹긴 하지만,
중요한 건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나는 특히 우울할 때 단 것을 많이 먹는 편이었다.
초콜렛을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좋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초콜렛은 고체의 덩어리로 존재하는 물질이 아니라
카카오라는 식물이었다는 것,
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외에도 내가 모르는 생물들이 많이 들어있겠지.
사탕수수라든지,
어찌되었든
내가 먹는 모든 것이 언젠가는 생명이었으며
그 생명을 죽이는 과정을 거친 것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후에,
쓸데없이 많이 먹지 않게 되었다.
특히 고기는 맛이 없어졌다,고 할까.
물론 먹긴 먹는다.
하지만 전에는 고기라면 환장을 했는데
지금은
있으니까 한 두 점 먹는 정도?
너무 많이 먹을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탓이다.
.
.
아무튼 그래서 오늘 점심도
만두 3점에,
사과 1개를 먹었다.
과일이나 두부 같은 걸 식사에 겻들이면 좋은 것 같다.
먹는 것에 집중하다보니
세상의 음식을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먹을 수록 더 먹고 싶은 음식'과
'먹다보면 그만 먹고 싶어지는 음식'이다.
먹을 수록 더 먹고 싶은 음식은,
짜거나 맵거나 단 음식이다.
라면, 떡볶이, 고기, 튀김, 빵, 과자 등등.
이것들은 먹을 수록 더 먹고 싶고
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먹은 다음에야
손을 내려놓게 되는 음식들이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먹고 난 후 속이 편하지 않고
기분도 별로 안 좋다.
특히 밀가루.
먹다보면 그만 먹고 싶어지는 음식은,
과일이나 두부이다.
특히 두부가 그렇다.
작은 조각 두 세개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물론 맛도 있다.
밥 먹을 때 다른 반찬도 맛있게 먹으면서
두 부를 몇 조각만 먹어주면
배가 부른다.
여기서 배가 부르다는 건,
'그만 먹고 싶다'
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자극적인 음식은 배가 불러도 더 먹고 싶다.
하지만 자극이 적은 음식은,
조금만 먹어도 '그만 먹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은 먹고 싶은 걸 식사로 먹되
양을 조금 줄이고
후식이나 반찬으로
먹다보면 그만 먹고 싶어지는 음식을 겻들이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밥 반공기, 쪽갈비 하나에
물김치나 여러 반찬을 겻들인 다음
블루베리를 먹었다.
그러면
'그만 먹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식탁을 미련없이 떠나게 된다.
점심에는 아까 말했듯
만두 세 개와 사과 하나.
만두를 세 개째 먹을 때까지만 해도
'아, 만두를 하나 더 먹을까'
하는 유혹을 느꼈는데
사과를 먹기 시작하니
사과 하나를 다 먹기도 전에
'아 배불러, 그만 먹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과를 겨우 다 먹고 난 뒤에
또 미련 없이 식탁을 떠났다.
오늘 저녁에는,
아직 먹고 싶은 것이 없지만
맛 있는 것을 조금 먹은 뒤에
운동을 갔다와야겠다.
.
.
역시 글을 쓰니까 너무 좋다.
아까 아침까지만 해도
솔직히 종아리 알 때문에 카오스가 와서
계속 핸드폰으로 종아리 알 빼는 법 검색하면서
좌불안석 했었다.
동생이 하던 말이 생각나서 웃기기도 하다.
'누난 큰 일엔 침착한데
작은 일엔 안 그렇단 말이지.'
정확한 지적이시다.
큰 일에 침착하게 잘 대처한다고 작은 일에도 그렇단 보장은 없다.
나도 종아리 알에 민감하다*'_'*
친구한테 이야기 나누고 싶어도,
뭐랄까 친구가 나보다 다리가 좀 더 두꺼운데
내가 이런 얘기하면
엄살부리는 것 같고
친구가 기분이 별로 안 좋을까봐
또 말을 못 했다.
어쨌든 이렇게 글을 쓰고 나니 또 속이 한결 편하다.
이제 오늘 할 일이나 해야겠다.
죽은 시인의 사회 자막 없이 보던 거 마저 보고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가 있나본데,
그것도 다운 받아서 봐야겠다.
요즘 원서를 읽고 있는데
두 권의 책이 나치의 홀로코스트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의 수기였다.
딱히 찾아 읽은 건 아닌데
뽑아 들은 것들이 다 그런 책들이었다.
홀로코스트 수기 전에
맨 처음에 읽었던 책은 엄마에게 극심한 학대를 당했던 사람의 이야기였고.
난 여전히 이런 이야기가 좋은가보다.
어쨌든 재미있어서 잘 읽힌다.
영어 때문에 억지로 읽는다는 느낌도 없고.
모르는 단어는 그냥 넘어가주고
자주 나와서 뜻모르면 전체 맥락이 이해 안되는 것들만
영영사전으로 뜻 찾아서 읽고.
한 권은 Run, Boy run. 이었고
다른 한 권은 I will plant you a lilac tree였다.
후자의 책에서 쉰들러 리스트에 관한 이야기가 좀 나온다.
주인공 여자가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다가
쉰들러 리스트에 포함돼서
간신히 살아남는 이야기다.
쉰들러는,
나치 시대의 사업가였던 오스카 쉰들러를 말하는데
자기 기업에 1000명이 넘는 유대인들을 고용해서
그들을 구했다고 한다.
왜 그랬는지 어떻게 그랬는지
아직 정확히는 몰라서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를 봐봐야겠다.
.
.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내 이야기쯤은 가볍게 여겨져서 좋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남은 사람도 있고,
심지어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아직 살아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좀 엄살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7살부터 나치를 피해 숲속에서 날짐승을 먹으면서 살아야 하지도 않았고
그러다 들키면 게슈타포에 잡혀가 맞지도 않았고
남의 집 더부살이를 하다가 팔이 잘린 적도 없다.
그런 모든 일을 겪고도 살아남아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의 오늘을 감사히 여기도록 노력해본다.
어쨌든 살았지 않은가.
집단 폭행을 당하고 나무에 매달려 죽은 십대 소녀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너무 불쌍하다.
.
.
다시 오쇼 라즈니쉬로 돌아가면,
그가 한 기막힌 말이 하나 있다.
어둠과 빛에 대한 이야기인데,
와,
나에게 꼭 필요한 통찰이었다.
그가 말하기를
사람들은 자신 안에 어둠이 가득해서 빛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먼저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는
나는 그게 왜 문제라는 건지 알지 못 했다.
나 역시도 내 안의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어둠 때문에 내가 밝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이 어둠이 사라지면 내가 밝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오쇼는 이어서 말한다.
'어둠은 실체가 아니다.'
'어둠은 단지,
빛의 부재 현상일 뿐이다.'
아,
.
.
'어둠을 없애고 싶다면
그냥,
거기에 빛을 비추면 된다.'
와
아
이거 진작 좀 알았으면
와, 대박.
그냥 빛만 비추면 된다는 것이다.
어둠을 비우고 빛을 채우는 뭐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다.
어둠은 실체가 아니라
단지 빛이 없어서 생긴 그림자.
그림자를 없애고 싶다면
그 위에 빛을 비추면 된다.
그러니까.
내가 우울하면 우울을 걷어내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냥 행복하면 된다.
웃으면 된다.
내가 지금 어두운 이유는
'빛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 인생에 빛을 쪼이면 되는 것이다.
어둠이 물러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래서 어둠은 그만 보고
그냥 빛이나 쫓아다니기로 했다.
어둠이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또 한 가지,
자기 자신을 따라다니는 그림자를 떨쳐버리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리다가 결국 탈진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도,
오쇼는 들려준다.
나 역시도
내가 갖고 있는 나쁜 면들,
내가 겪은 안 좋은 일들을
벌레 떨구듯 떨쳐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었고
그게 잘 되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는
좌절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 즈음엔
아, 이게 쉽게 떨어지진 않는가보구나,
까지 수긍하고 있었는데
오쇼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따라오는 그림자가 보기 싫다면
그늘 밑에 가서 앉으면 된다.'
와
대박이다.
.
.
더 큰 그림자 안으로 숨으면 된다는 것이다.
이건 솔직히 아직 내가 잘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더 큰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노력 중의 하나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글을 읽는 것이다.
사실 내가 의식적으로 하는 건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이유에서인 것 같다.
내 그림자보다 더 큰 그늘들,
그 안에 들어가 앉기 위해.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보기 위해.
.
.
요즘 이런 이야기를 통 친구와 못 나눴더니
폭풍으로 쏟아지는 것 같다.
사실 친구와 같이 살게 된 이후로
오히려 더 이야기를 안 하게 되는 것 같다.
가족만 그런 줄 알았더니.
아니면 이 친구가 너무 가족 같아졌나.
왜 같이 사는 사람하고는 많은 이야기를 안 하게 되나 모르겠다.
아무튼.
.
.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내 종아리는 지금 망하기 일보직전이다.
오늘부터 운동 전, 후에 스트레칭을 잘 해야겠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집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나가서
운동을 하고
다시 집에 와서 스트레칭을 했는데
그게 아니라 아예 공원에 나가서 운동 시작 바로 전,
운동 끝난 바로 후에 스트레칭을 해야겠다.
집까지 오는 데 삼십분은 걸리니까.
그리고 집에 와서 L자 다리도 해주고
종아리 스트레칭 따로 하고 마사지도 좀 해줘야지.
그리고 당분간은 언덕은 오르지 말아야겠다.
동네 뒷쪽에 언덕배기가 하나 있는데
산이 위험하다고 어머님이 못 가게 하셔서 거기로 만족을 하고 있었지만
거기도 이제 안 가겠어.
종아리 직빵으로 땡기는 곳이야.
내 종아리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를.
그리고 근력 운동이나 시작해야겠다.
내가 싫어하는 근력 운동.
특히 복근 운동은 너무 싫다.
그 복근 땡기는 느낌이 너무 싫어.
얼굴도 빨개지고.
그래도 하는 게 좋다니까 해봐야지.
일주일에 세 번, 20분씩만 하면 된다니까.
와 근력 운동 20분이면 진짜 죽겠다.
3분도 하기 싫은데.
하지만 운동을 하니까
내 몸을 찾은 것 같아서 기분은 전보다 훨씬 좋다!
전엔 뭔가 머리만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는데
이젠 온 몸으로 걷고 있는 느낌.
결론은
종아리 근육아 풀려라
내 다리야 원래대로 돌아와라,
이다.
끄읕.
아,
그리고 요즘 울다 분위기는
전보다 많이
'귀여워'진 것 같다.
물론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이 많지만요...☞☜
글을 읽는 게 재미있답니다.
다양한 이야기가 많아서*'_'*
오랜만의 일기,
중구난방이었지만
정말 끄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