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매일 내 얘길 조용히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오늘도 그 사람에게 내 얘길 했다. 어제 그 사람이랑 뭘 했고, 무슨 얘길 했고, 이러쿵 저러쿵
어쨌는데 아침에 MSN으로 말을 해도 씹어버렸고.....
.......
여하튼 모든 걸 다 얘기한다. 그 사람이 날 갖고 놀았다는 생각에-설령 이게 나의 독단적인
생각이라도 어쩔 수 없다. 어쨌든 그 사람의 말은 늘 농담으로만 일관하니까- 분통이 터져
하루종일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는데 저녁에 그 사람을 만나 다 얘기하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남자는 남자가 안다고 했던가?
금요일에 토요일날 그 사람과 영화를 보기로 했다고 하니까 그 사람은 시나리오(?)를 말해줬다.
분명 식사하고 영화보고 술 마시러 가자고 할거라고. 그리고 집까지 바래다 줄거라고.
역시나 그의 시나리오는 완벽했다. 어쨌거나 택시로 집까지 바래다 준다는 걸 내가 거절하긴
했지만 우스울 정도로 그렇게 딱 맞아 떨어지는 걸 보고 놀랐다.
저녁에 MSN에서 그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다음주에 영화를 보여달란다.
뜻밖이었다. 자기는 스파게티-내가 스파게티를 제일 좋아한다. 그래서 어제도 스파게티를
먹었고-를 사줄테니..
그래서 알았다고. 하지만 말을 할수록 짜증만 더해갔다. 날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고를 떠나서
진실되지 못한 그의 말들.. 늘 농담식으로 일관 하는 그의 태도가 짜증이 났다. 갑자기 날 존중해주는
마음이라며 존댓말을 쓰는 것이 아닌가? 이빠이 짜증!!!
그래서 비꼬면서 그랬지. 어제 고마웠으니까 내가 당연히 영화 보여주겠다고. 하지만 다음주엔
안되고 이번주에 사주겠다고. 난 빚지고는 못사는 사람이라 빨리 사주고 싶다고.
그랬더니 토요일에 보여달란다. 그리고 내 얘길 들어주는 사람에게 요목조목 다 말을 했더니
왜 자꾸 바보같이 구느냐고 한다. 만나지 말라고.
영화 보여주지 말라고. 받았으니까 줘야 된다고 하니까 그렇게 살 필요 없다고.
받은 건 받은 거고 다 뭔가 끙끙이 속이 있으니까 영화를 보여달라는 거라고.
내 얘길 조용히 들어주는 사람과 얘길 하고 있으면 내가 참 무지하다는 생각이 든다.
난 개인적으로 나름대로 내 또래에 비해 생각도 깊고 경험이 많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아니였다.
그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건방진 착각이었을 뿐.
친구들이 남자친구나, 혹은 그 밖에 고민을 털어놓으면 난 경험자로써,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들었던 얘기들을 모조리 끌고와 내 생각과 접목시켜 말해주었다. 내가 생각해도 훌륭한 카운셀러
라 믿어왔다. 맹충이 같이.
그러나 지금은 그런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그 사람이 날 갖고 노는건지, 좋아서 그러는건지..
아무런 분간이 가지 않는다.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이젠 그 사람에게 신경쓰지 않으리..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이러는 내 자신이 등신같다.. 가엾고.
세상물정을 이렇게 모르나 싶고....
정신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