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에 이름이 세글자인 중국집이 생겼다.
아니 중국집이라면 자존심 상할꺼다.
척 보기에도 고급 차이니즈 레스토랑이다.
한문으로 구.. 무슨 산인데 가운데 글자를 모르겠다.
아는 한자틈에 모르는 한자 있으면 끼워 맞춰 보는 버릇 있지 않은가.
구월산? 구식산? 구린산?....
잘 보니 九草山이었다.
아홉가지 풀이 나는 산이라..음..
이렇게 쉬운 글자를 몰라보다니
획수가 하나라도 더 있으면 자세히 보기도 전에 모르는 글일거라고 단정하는 버릇은 한자공포증이 만든 기피현상이다.
어쨋든 척보기에도 고급, 부티, 값나가는 그런 수식어가 어울리는 장소가 생겼길래 구리구리한 동대문에 왠 분위기냐 싶어 중식 체험기를 시작했다.
점심시간에 혼자 과자로 때우거나 커피 진하게 다려 마시거나 그랬는데 새로운 체험 좋아하니까 좋은 재미꺼리였다.
들어서자 은은한 샹들리에와 똑같은 유니폼으로 빼입은 직원들이 보였다.
테이블은 전부 하얀 식탁보를 깔아놓고 초록색 덮개를 마름모 모양으로 덧깔고 자리마다 상아색 식판도 깔렸다.
그리고 초록색 산처럼 곱게 잘 접은 냅킨이 각 사람앞마다 세워져 있고 수저는 모두 받침대에 놓여 약 15도 정도 기울기로 누워있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완벽한 세팅이었다.
이쯤되면 혼자 짜장면이나 먹으러 오기엔 좀 부담스런 외모다.
그래두 뭐 나쁜짓하러 오는것두 아닌데 위축될거 뭐있어.
들어서자 교육된 부지배인급 연령의 아저씨가 정중히 인사하며 안내했다.
언행이 초보자가 아니라는걸 알수 있도록 노련했다.
-일행분은 몇분이십니까?
-저 혼잔데요.
-한 분이십니까?
다시 반문하길래
-여기 혼자오면 안돼는덴가요?
되물었다.
잠바 주머니에 손찌르고 안내하는 자리 가서 앉았다.
역시 이런 고급 레스토랑에 혼자 오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왜 사람들은 혼자 밥먹으러 가는걸 어려워 하는걸까.
아니 어려워 하게끔 시선을 주는 걸까..
가운데 자리에 떡하니 앉으니까 주변의 눈길이 느껴진다.
2인분이 기본인 낙지전골이나 시골밥상같은 메뉴도 아닌데 뭘 그렇게 생소하게 쳐다보나 모르겠다.
주문판을 열어보니 고급요리 위주로 나열된 비싼 메뉴가 제일 앞쪽에 있었다.
난 당연히 제일 뒤에 배치된 짬뽕 짜장 메뉴판쪽을 봤다.
-짜장면 하나요.
-하나요?
주문받으러 오는 사람조차 되물었다.
모두들 동행이 있을거라고 생각하네.
식탁보도 멋지지만 반찬도 이쁜 접시에 기본 세 접시가 나온다.
단무지, 김치, 그리고 뭔지 모를 각종 아삭아삭한 야채로 버무린 생채 그렇게 세가지나 된다.
이쯤 되면 더 부담스러워 진다.
난 그냥 짜장면 먹을껀데..
하지만 진짜 부담스러운건 식탁위에 깔린 하얀 식탁보였다.
먹다가 흘리면 바로 흰 천이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테이블은 금방 얼룩덜룩 해졌다.
이런 기다란 나무 젓가락은 집기도 어렵단 말야..
내 자리에서 바로 정면으로 보이는 긴 탁자에 회사원으로 사료되는 남자들 6명이 쭈루룩 앉았다.
그들은 내가 들어설때 부터 내 쪽을 힐끔거렸다.
그들중 뒤 돌은 2명을 제외하고 모두 하나씩 나랑 눈이 마주쳤다.
젠장..
눈길에 안지려고 눈을 안피하고 덩달아 계속 쳐다봤다.
먹는데 집중하면 되는데 짜장면은 왜 이렇게 안나오는거야.
음식은??
정말 맘에 들었다.
깔끔하고 정성스럽고 무엇보다 찬을 비롯한 모든 음식의 간이 싱거운 편이었다.
심지어 간장도 안 짰다.
짠 음식 질려버릴꺼 같아.
진짜 맛난 음식은 양념도 적고 간도 약하지..
지나친 양념은 재료 고유의 맛을 앗아가기 때문이야.
재료 고유의 맛이란......
....이쯤하자.
더 하면 초밥왕이나 맛의 달인 몇권은 써야 한다.
음..괜찮은걸..
쫄깃한 면발과 신선한 재료..
게다가 이렇게 깔끔한 김치는 한식집에서도 못먹어 본거 같다.
여기 데리고 오고 싶은 친구들이 떠올랐다.
그나니, 유나기, 물소리, 남자친구...
혼자 뭔가 하고 있을때 좋은건 약간의 외로움과 약간의 자유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 했음 싶은 누군가에 대한 약간의 그리움이다.
난 그 느낌이 좋은데...
저 힐끗거리는 아저씨들은 그 느낌을 알까?
그렇게 주변 아저씨족들의 눈총을 받으며 혼자 짜장면을 맛있게 먹었다.
계산대로 걸어가는 길이도 멀군..
계산하는 아저씨가 맛있게 드셨습니까 라고 느끼한 미소를 깃들이는것이 역시 서비스업계에 뼈를 묻은 노련함이 보였다.
그리고 나와서 다시 간판을 봤다.
구...?...산??
저게 뭐지??
잘 보니 九草山(구초산)이 아니라 九華山(구화산)이었다. -_-;;